Monday, July 6, 2009

기준은 끈질긴 사람들이 만든다

 우리가 바꿀 도리가 없다고 여긴 우리 사회의 풍습과 통념, 심지어 법조차 바뀌어 왔고 바뀌기 마련이다. 부당함을 '어떻게든' 밝히고 '무슨 수를 쓰든' 바꾸어 나가면 '어떻게든' 바뀐다. 이를 잊지 않고 바톤을 받고 넘겨 가면 어느새 기준이 바뀌고 세상은 조금이나마 이상향에 가까워진다.

 서양식 결혼 예식 중에 아버지가 딸의 손을 잡고 입장하여 사위에게 잡은 손을 넘겨 주는 풍습이 있다. 출처는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딸에 대한 소유권을 사위에게 넘기는 의미라는 얘기가 있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현재의 인권 기준으로 봤을 때 악습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요즘 어느 아버지가 사위에게 딸을 가지라고 주겠는가? 드라마에 나오곤 하는 특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딸 스스로도 남편의 소유물이 되겠다는 생각은 않을 것이다. (출처를 모르는 얘기가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 저 옛날 아버지가 인간 말종은 아니었다고 본다. 그도 다만 그가 태어나고 자란 시대의 가치관에 맞게 행동했을 따름이지 않겠나?

 그런데 기준이 달라졌다. 2009년도 현재, 어떤 사위놈이 '당신이 내게 딸 손을 넘겨 줬으니 이 여자는 내 거요.'라고 얘기를 들은 아버지 중 주먹이든 발이든 날리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 본다. 거창하게 여성 인권이나 페미니즘을 논하지 않더라도 남편이 아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다면 미친 놈이라 여길 것이다. 심지어 노년층 중 배우자 얼굴 한 번 못 보고 결혼했던 분들조차 지금은 그런 세상 아니라면서 손을 저을 게 뻔하다.

 여전히 여성 인권에는 치명적으로 미진한 면이 있고 작게나마 부작용까지 나타났지만 지금까지의 흐름 자체가 부당하다 할 사람은 거의 없다. 맘에 들지 않더라도 어느새 이 흐름이 대세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인간이라 인식하는 게 대세이다.' 라는 기준이 만들어지도록 최초에 나선 사람은 누구일까? 여성 인권에 대한 역사를 되짚어 보면 공식적인 시초가 나오긴 하겠다. 소설이나 영화라면 어떤 영웅에 의해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 났다고 이야기를 풀어 내겠지만, 실상은 일반인들이 특기하지 못하는 사람과 사례가 쌓이고 쌓이다 혁명과 반혁명이 약간씩 덧붙여지며 결국 커다란 변화를 이루어 낸 것이라 본다.

 이러한 여성 인권 신장사를 본받아야 할 제2, 제3의 기준 싸움이 지금 이 시간에도 벌어지는 중이다. 비정규직, 환경, 교육, 주거 등에 대해 인간적인 기준이나 기득권(수구?)만 지키는 기준이냐를 두고 피터지는 싸움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난다. 끈질기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해내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서로 격려해 나간다면 기준을 자신에게 유리할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게 된다.

 얼마든지 가능하다. 가능하다.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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